고대 그리스 미술
고대 그리스 미술은 인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동시에 이상적인 묘사의 발전, 특히 나체의 남성상을 주요 대상으로 삼은 변혁이 여러 고대 문명 가운데서도 두드러졌다. 미술 양식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기원전 750년에서 300년경 사이로, 그 발전 속도는 고대 수준에서 현저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는 조각으로 가장 잘 드러나며, 회화에서도 중대한 혁신이 벌어졌으나, 당대 수준을 알 수 있는 원본이 현전하는 경우가 얼마 되지 못한 탓에 기본적으로 추정의 영역이며, 논외로 그리스 도기 회화의 경우 별도의 분야로 잘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보면 남성을 누드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남성의 아름다운 몸은 신을 기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로 ‘아름다운 남자의 나체는 신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였다. 그리스인들은 ‘남자가 자기 몸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덕(德)을 쌓는 일이자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기원전 6세기말 이후 아테네에서는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기리는 축제에서 미남 선발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남성의 신체에 대한 숭배는 신념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태초의 그리스 미술은 '고대 그리스 미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리스 신석기 미술과 에게미술이 해당된다. 에게 미술은 키클라데스 미술과 미노아 미술, 미케네 미술 등 에게문명의 문화를 아우른다. 이 시기를 지나서 시작되는 고대 그리스 미술은 양식에 따라 크게 기하학기, 고졸기, 고전기, 헬레니즘기의 네 가지 시대로 구분된다. 기하학기의 시작점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잡는 것이 보통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처음 200년간의 미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적기 때문에 이를 그리스 암흑기로 칭한다. 기원전 7세기에 이르면 고졸기 양식이 서서히 발달하는 모습을 보이며 흑회식 도자기 회화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목전에 둔 기원전 500년부터 고졸기에서 고전기로 넘어가며, 기원전 330년대 알렉산더 대왕의 집권기부터는 고전기가 끝나고 헬레니즘기로 접어들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시각에 따라 기원전 1세기경을 '그리스로마기'로 부르는 등, 동부 그리스 세계만을 한정하기 위한 시대 구분도 존재한다. 대 그리스 미술을 네 시대로 구분할 때의 주의점은,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라 하여 실제로도 급격한 변화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미술 양식의 발달은 일관된 것이 아닌, 각 지역마다 각기 다른 속도로 이뤄졌으며, 특정 시대라 하더라도 어떤 예술가들은 다른 이들보다 획기적인 양식으로 작업한 경우도 존재했다. 또 확고한 지역 전통과 현지 교단의 요건이 각 예술 작품마다 드러나기에, 출신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고대 그리스 미술이다. 한편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은 다양한 제품으로 제작되어 널리 수출되었으며, 이를 통한 고대 그리스 세계와 주변 문화권 사이의 교역과 번영은 온 시대를 통틀어 대체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1. 기하학적 시기(B.C 1000년 말~700년)
기하학 양식(幾何學 樣式)은 꽃병 그림에 들어간 기하학적 모티브를 주된 특징으로 하는 그리스 예술의 한 단계로, 그리스 암흑기 말인 기원전 900년경에서 700년경까지 발달한 미술 양식이다. 아테네를 중심지로 하여 교역을 통해 에게해의 무역 도시 곳곳에 퍼졌다. 그리스 암흑기는 기원전 1,100년경에서 800년경으로 이 양식의 역사적 기간보다 길지만, 이 독특한 도예 양식과 연관지어 기하학 시대로도 부른다. 고대 그리스 미술은 다양한 제품으로 제작되어 널리 수출되었으며, 이를 통한 고대 그리스 세계와 주변 문화권 사이의 교역과 번영은 온 시대를 통틀어 대체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기하학 문양 초기(기원전 1050년 ~ 900년)동안 도기의 모양은 미케네의 유동적 성질에서 벗어나 정밀하고 간단해졌으며, 캘리퍼로 새긴 동심원이나 반원같은 몇가지 기하학 모양이 들어간 가로로 된 장식 끈을 그려 위아래를 나누었다.
2. 아르카익 시기 (B.C 620 ~ 480 년)
페르시아 전쟁 전까지의 시기로서 이집트 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인체를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완전하게 발달하지 못한 단계로 조각은 엄격하고 딱딱한 느낌이 난다.
3. 고전 양식(B.C 480 ~ 323년)
나체 조각상의 육체미가 완성되는 고전(Classic)시대이며 기원전 480년부터 기원전 323년에 완성된 고전(Classic)시대에 비로서 나체 조각상의 육체미가 완성된다. 콘트라포스토 기법을 비교하더라도,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동자세에 머물렀던 아르카익 시대와 달리 고전 시대에는 균형잡힌 비대칭 구도를 살려 생명력 넘치는 인간의 몸을 표현해 내었다. 고전 시대는 훗날 서양 미술의 규범이 되는 시기로 서양미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 시대의 초기인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조각상은 엄숙하면서도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을 ’엄격양식‘이라고 하며 이후 기원 전 4세기를 지나면서 그리스 미술은우아하고 아름다운 ’우미양식‘이 유행하게 된다. 남성 조각상의 인체 비율도 우람한 체형에서 다소 마른 체형으로 더 나아가 칠등신에서 팔등신으로 바뀌고, 얼굴이 작아지는 등 남성미의 상형이 변모하게 된다. 고전시대 후기의 ’우미양식‘을 확립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인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를 보면 올림픽 우승자의 몸을 모델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성이 감도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3. 고전 양식(B.C 480 ~ 323년)
나체 조각상의 육체미가 완성되는 고전(Classic)시대이며 기원전 480년부터 기원전 323년에 완성된 고전(Classic)시대에 비로서 나체 조각상의 육체미가 완성된다. 콘트라포스토 기법을 비교하더라도,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동자세에 머물렀던 아르카익 시대와 달리 고전 시대에는 균형잡힌 비대칭 구도를 살려 생명력 넘치는 인간의 몸을 표현해 내었다. 고전 시대는 훗날 서양 미술의 규범이 되는 시기로 서양미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 시대의 초기인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조각상은 엄숙하면서도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을 ’엄격양식‘이라고 하며 이후 기원 전 4세기를 지나면서 그리스 미술은우아하고 아름다운 ’우미양식‘이 유행하게 된다. 남성 조각상의 인체 비율도 우람한 체형에서 다소 마른 체형으로 더 나아가 칠등신에서 팔등신으로 바뀌고, 얼굴이 작아지는 등 남성미의 이상형이 변모하게 된다. 고전시대 후기의 ’우미양식‘을 확립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인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를 보면 올림픽 우승자의 몸을 모델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성이 감도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4. 헬레니즘 시기(B.C 323 ~ 30년)
그리스 미술이 로마로 흡수되면서 사라지는 단계로서 사실주의에 입각한 표현성이 발달하였다. 부드럽고 관능적인 운동 동작을 표현하였다. 순간적인 동작과 세밀한 묘사를 추구하였다. 초상조각이 발달하였으며 현실미가 보편화 되었다.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그리스의 미의식은 ’헬레나즘(Hellenism)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고 유럽, 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동방원정을 계기로 그리스 문화가 전세계로 전파되었고 동시에 오리엔트 문화가 유입되어 두 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문화를 헬레니즘 양식이라고 부른다.
헬레니즘 양식에서는 개인적인 감각을 중시하고 이상주의 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가 주목을 받게된다. 신이 아닌 군주나 특정 인물을 모델로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표현하는 사실성이 강한 묘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조각상도 신에게 바치는 봉납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자 예술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헬레니즘 양식에서는 관능적인 조각상이나 감각에 호소하는 미술품이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