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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19세기 초 : 영국,미국 및 프랑스 : 전통의 단절

서양 미술 이야기 이교수 2024. 1. 21. 16:28

역사책에서 근대는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미술에 있어서 이 시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시기는 조각가나 화가가 된다는 것이 보통의 직업과는 다른 일종의 천직(天職)으로서 별도로 취급되던 르네상스 시대였다.  또한 이 시기는 종교 개혁으로 교회 성상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토록 자주 쓰이던 그림과 조각들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고 이에 따라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갑작스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미술가들은 여전히 길드와 협회를 조직하였고, 도제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성과 시골의 별장을 장식하거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진열실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기 위하여 미술가들을 필요로 하였던 돈 많은 귀족들의 주문에 의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1492년 이후에도 미술은 유한 계급의  생활 속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볼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비록 유행이 바뀌고 미술가들이 다른 문제들에 부딛치게 되어, 어떤 사람은 인물의 조화로운 배치에 관심을 가지고, 대체로 회화와 조각의 목적은 전과 똑 같았으며 누구도 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호레이스 월풀, 리차드 벤틀리와 존 츄트<런던 트위크넘의 스트로베리 힐>, 1750 - 1775, 신고딕 양식 별장.

 

존 페프워스<첼튼엄의 도셋 하우스> 1825년경, 섭정 시대&nbsp; 건물의 정면.

 

토머스 제퍼슨 <버지니아의 몬티첼로 저택>, 1796 - 1806.

 

토머스 제퍼슨<버지니아의 몬티첼로 저택>.

 

존 싱글톤 코플리<1641년에 다섯 명의 탄핵된 의원들의 인도를 요구하는 찰스 1세> 1785년, 233.4 X 312 cm, 켄버스에 유채, 매사추세츠, 보스톤 시립 도서관.

 

자크-루이 다비드 < 암살당한 마라>, 1793년, 캔버스에 유채, 165 X 128.3 cm, 브뤼셀 벨기에 왕립 박뭎관.

 

 

 

프란시스코 고야 < 발코니의 사람들>, 1810 - 1815년경, 캔버스에 유채.

 

프란시스코 고야 <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도 7세>,1814년경, 캔버스에 유채. 207 X 140cm, 마드리드 프라도.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도 7세> 의 세부 모습.

 

 

프란시스코 고야 < 거인>, 1818년경, 28.5 X 21cm, 애퀴틴트.

 

프란시스코 고야 <거인>

 

윌리엄 블레이크 <태초부터 계신 이>, 1794년, 23.3 X 16.8cm, 양각 에칭에 수채,&nbsp; 런던 대영 박물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 1815년, 캔버스에 유채, 155.6 X 231.8 cm, 캔버스에 유채, 런던 국립 미술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눈보라 속의 증기선>, 1842년. 캔버스에 유채, 91.5 X 122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존 컨스터블 <나무 줄기의 습작>, 1821년, 종이에 유채, 24.8 X 29.2 cm, 종이에 유채,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존 컨스터블<건초 마차>, 1821년, 캔버스에 유채, 130.2 X 185.4cm, 런던 국립 미술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실레지아 산악 풍경>, 1815 - 1820년경, 캔버스에 유채,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프랑수와-조제프 하임 <1824년 파리의 살롱전에서 훈장을 나눠주는 샤를 10세>, 1825-1827년, 173 X256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